2025-01-15 새벽 기도회 말씀
에베소서 4장 11-16절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찬송가 91장 / 288장
오늘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을 통해 신앙의 균형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성도는 어떤 균형을 이루어야 할까요?
오늘 말씀으로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먼저는 공동체적인 균형입니다.
11절을 보니 주님께서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다고 말합니다.
각자에게 서로 다른 봉사의 일이 맡겨져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주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다른 봉사의 일을 맡기신 이유가 12절에 나옵니다.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 각자에게 서로 다른 봉사를 맡기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모두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래서 몸된 우리는 누군가는 팔로, 누군가는 발로, 누군가는 눈과 코로 각자에게 맡겨진 임무를 함으로 그리스도가 생각한 계획을 이루어 가는데 쓰임받습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다른 이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짧은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것인데 틀린 것이라고 말하며 비난하고 정죄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사람의 그런 다른 점을 통해 오늘도 놀라운 일을 행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내가 이해되지 않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들었던 손가락을 내려놓고.. 그를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합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공동체적인 균형입니다.
다음으로는 개인적인 균형입니다.
성도는 어떤 하나로 치우쳐지는 것이 아니라 균형적인 신앙을 이루어야 합니다.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성도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믿는 것을 넘어 아는 일에도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이것을 저는 ‘개인적인 균형’이라고 오늘 표현하고 싶습니다.
제가 새가족 교육 자료들을 보다가 재미있는 예시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피자를 전문가급으로 잘 만드는 엄마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참 좋겠죠?
그런데 이 엄마가 다른 것은 하나도 못하고 그냥 피자 만드는 일만 한다고 하면 어떨까요?
설거지도 안해요, 빨래도 안해요.
그렇다면 이 엄마는 좋은 엄마일까요?
아닐거에요. 왜냐하면 이 엄마는 피자는 잘 만들지 몰라도, 생활에 있어서는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지만, 그리고 천국에 가는 것이 가장 나에게 좋은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땅에 남겨두셨습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을 통해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예수로 자라나야 합니다.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이것이 오늘 하나님께서 저희를 천국으로 부르지 않으시고, 이 땅에 남겨놓으신 이유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어린아이의 신앙을 벗어나 조금씩 더 장성한 분량에 이르길 소망하며 노력하는 귀한 하루 되길 축원합니다.
2025-01-15 새벽 기도회 말씀
에베소서 4장 11-16절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찬송가 91장 / 288장
오늘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을 통해 신앙의 균형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성도는 어떤 균형을 이루어야 할까요?
오늘 말씀으로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먼저는 공동체적인 균형입니다.
11절을 보니 주님께서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다고 말합니다.
각자에게 서로 다른 봉사의 일이 맡겨져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주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다른 봉사의 일을 맡기신 이유가 12절에 나옵니다.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 각자에게 서로 다른 봉사를 맡기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모두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래서 몸된 우리는 누군가는 팔로, 누군가는 발로, 누군가는 눈과 코로 각자에게 맡겨진 임무를 함으로 그리스도가 생각한 계획을 이루어 가는데 쓰임받습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다른 이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짧은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것인데 틀린 것이라고 말하며 비난하고 정죄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사람의 그런 다른 점을 통해 오늘도 놀라운 일을 행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내가 이해되지 않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들었던 손가락을 내려놓고.. 그를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합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공동체적인 균형입니다.
다음으로는 개인적인 균형입니다.
성도는 어떤 하나로 치우쳐지는 것이 아니라 균형적인 신앙을 이루어야 합니다.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성도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믿는 것을 넘어 아는 일에도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이것을 저는 ‘개인적인 균형’이라고 오늘 표현하고 싶습니다.
제가 새가족 교육 자료들을 보다가 재미있는 예시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피자를 전문가급으로 잘 만드는 엄마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참 좋겠죠?
그런데 이 엄마가 다른 것은 하나도 못하고 그냥 피자 만드는 일만 한다고 하면 어떨까요?
설거지도 안해요, 빨래도 안해요.
그렇다면 이 엄마는 좋은 엄마일까요?
아닐거에요. 왜냐하면 이 엄마는 피자는 잘 만들지 몰라도, 생활에 있어서는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지만, 그리고 천국에 가는 것이 가장 나에게 좋은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땅에 남겨두셨습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을 통해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예수로 자라나야 합니다.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이것이 오늘 하나님께서 저희를 천국으로 부르지 않으시고, 이 땅에 남겨놓으신 이유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어린아이의 신앙을 벗어나 조금씩 더 장성한 분량에 이르길 소망하며 노력하는 귀한 하루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