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9 새벽 기도회 말씀 / 김균 목사
창세기 43장 16-22절
16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자기의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17 청지기가 요셉의 명대로 하여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니
18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
19 그들이 요셉의 집 청지기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 집 문 앞에서 그에게 말하여
20 이르되 내 주여 우리가 전번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가지고
21 여관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본즉 각 사람의 돈이 전액 그대로 자루 아귀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22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
찬송가 299장 / 322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발견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은 요셉이 다시금 양식을 사고, 시므온을 돌려받기 원했던 형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장면입니다. 요셉은 드디어 자신의 동생 베냐민을 만났습니다.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그래서 형제들을 집으로 데려와서 함께 식사하려고 준비합니다. 이는 분명 따뜻한 초대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형들은 이 초대를 전혀 다른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며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번 자루에서 발견된 돈 때문이구나. 이제 우리를 노예로 삼으려는 것이구나.” 사랑의 초대를 심판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형제들은 청지기 앞에 서둘러 말합니다. “우리가 지난번에 자루에서 돈을 발견했는데, 이번에는 그 돈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양식을 살 돈도 다시 준비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말 속에는 억울함과 두려움이 섞여 있습니다. 정직하려는 마음도 있지만, 그 안에는 불안이 가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과거의 죄책감이 그들의 마음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팔았던 죄, 그 아픔이 아직도 그들을 자유롭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은혜의 초대 앞에서도 마음이 무겁고 두려웠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은혜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집은 우리를 심판하려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두려워합니다. “혹시 하나님이 나를 벌하시려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런 죄인인데 받아주실까?” 이런 생각 때문에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완전한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초대는 심판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이미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형제들은 억울하여 해명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해명이 아니라 믿음이었습니다. 요셉의 마음은 형제들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도 우리의 변명이나 해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믿고 그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이 말씀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될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여러분의 삶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심판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회복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이끌고 계십니다. 은혜의 초대를 은혜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자유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초대하십니다. 우리의 두려움을 내려놓고, 죄책감을 내려놓고, 단순히 은혜를 믿고 받아들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식탁에서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25-09-29 새벽 기도회 말씀 / 김균 목사
창세기 43장 16-22절
16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자기의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17 청지기가 요셉의 명대로 하여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니
18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
19 그들이 요셉의 집 청지기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 집 문 앞에서 그에게 말하여
20 이르되 내 주여 우리가 전번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가지고
21 여관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본즉 각 사람의 돈이 전액 그대로 자루 아귀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22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
찬송가 299장 / 322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발견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은 요셉이 다시금 양식을 사고, 시므온을 돌려받기 원했던 형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장면입니다. 요셉은 드디어 자신의 동생 베냐민을 만났습니다.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그래서 형제들을 집으로 데려와서 함께 식사하려고 준비합니다. 이는 분명 따뜻한 초대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형들은 이 초대를 전혀 다른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며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번 자루에서 발견된 돈 때문이구나. 이제 우리를 노예로 삼으려는 것이구나.” 사랑의 초대를 심판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형제들은 청지기 앞에 서둘러 말합니다. “우리가 지난번에 자루에서 돈을 발견했는데, 이번에는 그 돈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양식을 살 돈도 다시 준비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말 속에는 억울함과 두려움이 섞여 있습니다. 정직하려는 마음도 있지만, 그 안에는 불안이 가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과거의 죄책감이 그들의 마음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팔았던 죄, 그 아픔이 아직도 그들을 자유롭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은혜의 초대 앞에서도 마음이 무겁고 두려웠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은혜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집은 우리를 심판하려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두려워합니다. “혹시 하나님이 나를 벌하시려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런 죄인인데 받아주실까?” 이런 생각 때문에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완전한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초대는 심판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이미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형제들은 억울하여 해명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해명이 아니라 믿음이었습니다. 요셉의 마음은 형제들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도 우리의 변명이나 해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믿고 그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이 말씀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될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여러분의 삶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심판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회복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이끌고 계십니다. 은혜의 초대를 은혜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자유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초대하십니다. 우리의 두려움을 내려놓고, 죄책감을 내려놓고, 단순히 은혜를 믿고 받아들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식탁에서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