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2 새벽 기도회 말씀 / 박은성 목사
창세기 44장 14-22절
14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15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을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16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17 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18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19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20 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21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를 보게 하라 하시기로
22 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찬송가 38장 / 420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발견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는 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더 거룩하게 다듬어가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도 이어집니다.
어제는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시는 분이시기에 ‘내게 피해 준 자들을 용서하고, 사랑하자’라는 말씀을 나누었다면.. 오늘은 그렇기에 ‘내가 지은 과거의 죄를 기억하며, 현재 올바른 선택을 하자’는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어제보다 더 정결한 저와 여러분이 되길 축복합니다.
요셉의 시험에 의해 형제들은 다시 요셉의 집으로 붙잡혀 왔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모른척하며 형제들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나아가 ‘은잔이 들어있던 자루의 주인만 종으로 남고, 너희는 돌아가라’라고 말합니다.
이제 막내 동생 베냐민만 이곳에 남기고 자신들을 돌아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때 유다가 앞으로 나아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22 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유다가 자신들의 가정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노년에 얻은 아들이 있는데, 그가 죽고 이제 막내 동생이 하나 남아있다. 아버지가 막내를 사랑하고 귀히 여겨서.. 만약 막내가 이곳에 남게 된다면 아버지는 죽고 말 것이다.’는 이야기를 한것이죠.
저는 유다가 이 이야기를 한 것이 참 의미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과거 요셉을 종으로 팔자고 주장했던 자가 바로 유다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셉 형제들 중 첫째는 ‘르우벤’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을 르우벤이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도리어 르우벤은 침묵하고, 유다가 나서서 베냐민이 종이 되지 않도록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것에는 과거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생을 종으로 팔아버리자고 말했던 자신의 언행을 후회하며, 유다는 이제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 ‘과거와 달라지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실수와 범죄를 반복하며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죠.
하지만 실수와 범죄로 끝나면 안됩니다. 성도는 그것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유다가 과거 자신이 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렸던 것을 기억하며, 오늘 자신의 동생을 보호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 다시 기회를 주시는 이유입니다.
과거에는 넘어졌지만, 오늘은 다시 일어나길 원하셔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저는 ‘공사중’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냥 길이나 건물이 공사중인 것을 좋아한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이 공사중과 같다는 의미에서 좋아합니다.
우리는 모두 완성된 곳이 아니라 공사중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람의 하나의 말이나 행동으로 그 사람 인생을 판단하면 안됩니다.
공사중에는 외관상 이뻐보이지 않을수도 있고, 때론 완벽해보이지 않을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사중은 그냥 멈춰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이라도 어제보다 더 나아지는 것이 공사중에 담겨진 또 다른 의미입니다.
오늘 유다가 잘 공사되어 과거보다 나아진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과거보다 더 나아지는 귀한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2025-10-02 새벽 기도회 말씀 / 박은성 목사
창세기 44장 14-22절
14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15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을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16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17 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18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19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20 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21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를 보게 하라 하시기로
22 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찬송가 38장 / 420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발견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는 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더 거룩하게 다듬어가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도 이어집니다.
어제는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시는 분이시기에 ‘내게 피해 준 자들을 용서하고, 사랑하자’라는 말씀을 나누었다면.. 오늘은 그렇기에 ‘내가 지은 과거의 죄를 기억하며, 현재 올바른 선택을 하자’는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어제보다 더 정결한 저와 여러분이 되길 축복합니다.
요셉의 시험에 의해 형제들은 다시 요셉의 집으로 붙잡혀 왔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모른척하며 형제들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나아가 ‘은잔이 들어있던 자루의 주인만 종으로 남고, 너희는 돌아가라’라고 말합니다.
이제 막내 동생 베냐민만 이곳에 남기고 자신들을 돌아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때 유다가 앞으로 나아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22 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유다가 자신들의 가정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노년에 얻은 아들이 있는데, 그가 죽고 이제 막내 동생이 하나 남아있다. 아버지가 막내를 사랑하고 귀히 여겨서.. 만약 막내가 이곳에 남게 된다면 아버지는 죽고 말 것이다.’는 이야기를 한것이죠.
저는 유다가 이 이야기를 한 것이 참 의미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과거 요셉을 종으로 팔자고 주장했던 자가 바로 유다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셉 형제들 중 첫째는 ‘르우벤’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을 르우벤이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도리어 르우벤은 침묵하고, 유다가 나서서 베냐민이 종이 되지 않도록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것에는 과거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생을 종으로 팔아버리자고 말했던 자신의 언행을 후회하며, 유다는 이제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 ‘과거와 달라지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실수와 범죄를 반복하며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죠.
하지만 실수와 범죄로 끝나면 안됩니다. 성도는 그것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유다가 과거 자신이 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렸던 것을 기억하며, 오늘 자신의 동생을 보호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 다시 기회를 주시는 이유입니다.
과거에는 넘어졌지만, 오늘은 다시 일어나길 원하셔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저는 ‘공사중’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냥 길이나 건물이 공사중인 것을 좋아한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이 공사중과 같다는 의미에서 좋아합니다.
우리는 모두 완성된 곳이 아니라 공사중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람의 하나의 말이나 행동으로 그 사람 인생을 판단하면 안됩니다.
공사중에는 외관상 이뻐보이지 않을수도 있고, 때론 완벽해보이지 않을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사중은 그냥 멈춰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이라도 어제보다 더 나아지는 것이 공사중에 담겨진 또 다른 의미입니다.
오늘 유다가 잘 공사되어 과거보다 나아진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과거보다 더 나아지는 귀한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